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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블로그에 글을 등록하기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간 티스토리 블로그를 쓰면서 느꼈던 점과 앞으로의 생각들을 정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것이 워낙에 관성의 동물이라 결심과 행동에 옮기기 전까진 언제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잘 알지만, 역시나 변화가 몸소 몸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되기 까지는 항상 어렵다. 그 어려움을 알기에 역시나 언젠간 되겠지 하는 체념도 있었다. 언제나 그랬었다. 그러면서 얻는 것은 몸의 안락함이요, 잃는 것은 소중한 시간이다. 이제 산 날과 앞으로 살 날이 이제 거의 절반에 가까운 위치에 와 있다....... 빌어먹을!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이다. 이마저도 관성이니 이쯤에서 접어 둔다!


티스토리 블로그의 장점은 많았다. 처음으로 나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났고, 이를 앤디 워홀형의 조언으로 버텼으며, 역시 앤디 워홀형의 도움으로 구글 애드센스도 달았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조언에 귀을 기울였으며, 그 조언대로 움직여 버텼다는 것! 이건 내 인생에서 꽤 큰 변화였다. 


티스토리 블로그에 글을 쓰며, 나의 개인적 가치관의 변화 그래프도 함께 심장박동 소리처럼 요동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은 내 맘 같지 않다'는 단순한 진리! 내가 좋아한다고 남들이 좋아한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마이너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더욱이 나의 관심사나 방식이라는 것이 남들에게는 버겨운 것이 많다. 독선에 가득차 있으며, 세상사가 어떻든 내멋대로 살던 것이 나였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갈망과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기 위해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내게 있는 것이 별로 없거늘 가만히 앉아 남들이 오기를 기다린다면, 깡통은 곧 내 것이 된다!


티스토리 블로그는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한다. 어떤 글은 쓰던지 간에 그것이 사람들의 관심사와 거리가 있다면, 결코 내 티스토리 블로그에 들어올 일은 없다. 설사 관심이 많은 테마라고 하더라도, 내 티스토리 블로그가 네이버라는 강력한 채널에서 노출이 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이미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에도 앤디 워홀형이 보내준 이미지는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앤디 워홀의 저 유명한 멘트(근데 그 말을 하지 않았다고 직접 댓글로 내게 알려준 이들도 둘이나 있다) "일단 유명해져라! 유명해지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는 내 블로그를 작성하다 중간에 막혔던 12월초에 중점 화두로 떠오른다. 그렇다. 세상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지 않는한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최근 많은 쉐프들과 식당들이 티비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를 타고 있다. 케이블 유명프로 '냉장고를 부탁해'나 '3대 천왕'과 같은 프로를 통해 한 번 방영만 되면, 매출은 수직 상승한다. '문전 성시!' 그 실제적 케이스를 바로 다음날에 확인할 수 있단다. 한 번 고민을 해보자! 과연 맛집은 모두 티비에 방영이 되는 것일까? 또, 티비에 나오면 정말 맛있을까? 더 나아가 겁나게 긴 줄을 서서 몇 시간동안이나 기다려서 먹을 만한 가치가 진정 있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대외적으로 하는 순간 이것도 독단으로 취급된다. 내 친구는 이런 나에게 '남자는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모든 걸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남들이 열광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고, 자신의 가치관에 함몰되어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면모는 많은 곳에서 확인하는 바이다. 내 평생 컴퓨터로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스타 크레프트'도, '포트리스'도, '카트 라이더'도 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게임은 가치가 없다고, 시간을 낭비한다고, 정신을 망가트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게임 안한 나는 무엇을 했고, 지금 난 무엇을 이루었는가? 다 병신같은 소리다!


누군가가 어떤 것에 신경을 쓰고,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한다면, 거기엔 분명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설사 그것이 전혀 내게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비난하거나 깎아내려선 안된다. 그러면 반드시 저항이 일어난다. 이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를 너무나 늦게 깨달고 있다. 이는 티스토리 블로그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을 찾아 다닌다. 웃고 싶으면 재미있는 것을, 욕하고 싶으면 세상 잡것들의 더러운 모습들을, 울고 싶으면 신파극에 가까운 최루성 콘텐츠를 찾는다. 그리고 격렬히 반응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리와 목표에 부응하지 못하는 글은 배제된다. 아무리 질 좋은 글이라도 바로 버려진다. 


또한 같은 테마의 글이라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씹기 좋게 조리하거나 표절하여 디벨롭한 콘텐츠에 반응한다. 전통을 추구하는 장인보다는 변칙을 잘쓰는 테크니션에게 홀리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세상은 알 수 없다는 푸념이 나오게 된다. 도대체 어떤게 맞는 것인지 말이다!


이쯤에서 생각을 좀 고쳐 먹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약동한다.


"티스토리 블로그에 좋은 글만을 엄선해서 여기에 내 혼을 불어넣어 한땀 한땀 글을 차곡 차곡 쌓아올리면, 언젠간 좋은 평가를 받을 꺼야~ 언젠간!"


맞을 수도 있다. 언젠간 나 죽고 나서 언젠간? 빌어먹을.... 그건 아니지! 난 내세를 기약하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한번 뿐인 인생에서 평생 꿀맛을 모르고 간다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닌가! 영화 '역도산'에서도 역도산 역을 맡았던 설경구가 한 말을 되새겨 본다.


"한 번 뿐인 인생 착한 척 하지 말아라!"



그땐 이런 무슨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할까하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간악해 보이기 까지 한 말이 요즘은 내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결국 이러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살아갸하 하는가라는 질문! 막막하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에서 나는 한편으로 개운한 감마저 든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보고, 듣고, 체험한 경험들에서 이 조언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 그 자체의 본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의심을 해본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것은 양자택일이 불가능한 답변이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 정진영이 내뱉은 대사다. "인간은 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악한 불안전한 존재가 아니던가!" 그렇다. 인간은 선악이라는 두 가지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 존재한다면, 그를 인간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문화적 존재이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 익히게 되는 사회화와 문화적 체험으로 우리는 생존을 위해서 사회적 활동을 하나씩 해나간다. 인간적이라는 것의 의미! 그것은 결코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렵다.


몇 일전의 일이다! 부동산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임차인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 기존임차인이 전격적으로 법정구속이 되면서 그의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는 명목이었다. 그런데 그 기존임차인은 다른 공인중개사사무소에 알리지 않고, 이미 계약을 했던 부동산에 부탁했다.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 하고, 빠른 일처리를 부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행동이다. 집을 빨리 내놓기 위해서 였다면, 최대한 많은 부동산에 알려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사를 하는 것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곳에 알리는 행동에는 한 가지 이득이 있을 뿐이다. 얼마 안된 기간에 계약을 다시 하게 되었으니 중개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우리 또한 그러한 셈을 어느정도 인정했기에 기존임차인이 하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한 달만에 계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그대로 보증금을 입금하는 문제로 그 기존임차인의 부인과 대면했다. 정산할 내용을 정리하면서 중개수수료를 보았는데 백 원짜리 한 장 빠지지 않는 정가 금액이었다. 관례상으로도 이 부분은 딜이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대로 계약은 이루어졌다. 우리로서는 다른 할 말이 없다. 그냥 그것은 놔둘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그 공인중개사를 보며, 세상의 무서움을 한 번 더 느낀다. 왠지 모르게 소름도 돋는다. 온실속에 살아온 내겐 이 모습이 적잖히 충격적이었다. 가치관이 크게 변동되는 시기에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모습에서 울적한 기분마저 든다. 세상의 인간들은 결국 자신의 이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구나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덮어놓고, 그 공인중개사는 나쁘다고 말할 성질이 아니다. 그는 법률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을 청구했고, 받아냈다. 오히려 그의 업무적 역량은 클 수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윤의 극대화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입장과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다급한 기존임차인에 더 감정이입하고, 공감한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면 그 공인중개사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반대로 내가 만약 공인중개사에 몰입하여, 생존과 삶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영화 '박하사탕'을 보자! 설경구는 군대 가기 전만해도 선량한 청년이었다. 군인이 되어 광주항쟁에서 자신이 쏜 총에 죽은 사람을 부둥켜 안고 좌절한 이후부터 그는 서서히 변해갔다. 어쩌면 설경구는 그때 그시절 역사라는 '사회화'를 거쳐 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그의 삶과 영혼은 망가진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순수시절, 첫사랑 순임이가 누워있고, 자신의 손에는 박하사탕이 들려 있다. 그는 철길에 오른다. 그리고, 달려오는 기차에 '절규'를 외친다. "나 다시 돌아갈래!'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보자! 정진영은 자신의 첫사랑인 청미를 외면하고, 배신하며 정치적인 성공 가도를 달린다. 갖은 비리와 악행을 저질러, 거액의 비자금과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쥔다. 그러나 그의 눈빛과 어깨는 언제나 무겁고, 어둡다. 표정은 굳어있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 건조하다. 그러나 자신의 첫사랑을 연상케 하는 최강희가 등장하자 순식간에 과거로 회귀하며,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어떻게든 그 봄바람을 쐬며, 과거로부터의 죄책감에서 해방코자 한다.


설경구와 정진영을 바라보면, 결코 그들을 나쁜 놈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설경구와 정진영으로 인해 비롯된 불행과 고통은 충분히 비난받을 만 하나 그렇더라도, 그들을 죽일 놈으로만 매도 할 수 없다. 그건 왜일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언제나 실수와 배신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며, 과거의 잘못으로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양심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가정해 보자! 그 공인중개사가 아픈 부모님이 있고,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공부시키는 가장이라면, 그의 이익추구 행동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그 복비를 맞춰주었을지도 모른다. 인간들의 내막을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에 대한 평가가 참으로 조심스러워 지는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넘어진 사람을 밟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몸부림으로 보이니 세상이 고정된 것이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가해자의 과거의 아픔이나 개연성있는 사연을 들어 관객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는 것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는 행위라고 평가한다. 물론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들 조차도 이 거대한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실수할 수 있고, 또한 그렇기에 어떤 이들의 실수나 고통에 공감하고, 번뇌한다. 


최근 들어 내가 유독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 몰입하고, 정진영에게 감정이입했던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와 관련된 생각과 교훈에 골몰하고, 그러한 문제의식으로 글을 쓰다보니 글은 길어지고, 에너지는 소모된다. 그러다보니 다른 글을 쓸 여유도, 이렇게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쓰는 행위 자체가 거추장 스럽게 느껴짐을 느낀다. 즉, 나 자신에 함몰되고 있으며, 내가 쓰고 싶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 술술 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의 호흡과 함께 하는 나만의 독백으로서 말이다.


이렇게 하면 블로그를 계속 유지하는게 힘들 수 있다. 내가 티스토리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단순히 글을 쓰는 목적이 아닌 온라인상의 채널을 하나 뚫기 위한 일종의 실험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처음이니 다 시행착오다! 어떤게 유효하고, 좋다라고 말할 만한 경험도 없다. 그렇다보니 계속 힘에 부친다. 이렇게는 계속 하기 어렵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


모든 글을 이런 식으로 쓰는 건 불가하다. 어떤 순수성을 지키려고 하다보면, 생존이라는 대전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신라의 멸망은 고질적인 골품제도도 한 몫했다. 성골만 중시하다 성골이 망하고, 진골이 최고라고 하다 결국 지방호족들에 의해 진골도 쇠락한다. '순수성!' 그건 참으로 듣기 좋은 말이다. 언제나 깨끗하고, 언제나 맑은 것! 그래서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할 것만 같으며, 철두철미한 합리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세상에 그런 것이 존재할까? 아마도 그러한 순수성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파라다이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들이 모여사는 세상 자체가 완전하지 않은데 순수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가 의문이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지껄였다. 그간 복잡하게 머리에 쌓아두며, 차일피일 변화된 어떠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한다는 갑갑함이 주저리주저리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앞으로의 티스토리 블로그에 작성하는 글의 방식에 변화를 가할 것이라는 것이며, 그 변화의 주포인트는 '대중성'과 '성과'라는 두 가지 지점으로 귀결된다.


어떻게 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대중의 반응을 얻을 수 있는가? 그에 대한 1차원적 해결책으로 일단 블로글에 쌓는 콘텐츠의 테마를 보다 대중적인 관심사를 끌어안고, 보다 짧고, 쉽고, 먹기 좋게 가공하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아직 어떤 구체적 기준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디렉션은 분명하다. 일단 가보자! 우선 살아남고 보자. 살아남기 위해선 노출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티스토리 블로그의 숙명이다! 반대로 노출되지 않으면 소멸의 길을 걷는다. 어제 최강희라는 연관단어로 본 드라마 '학교' 시리즈에서 그 당시 나름 유명했던 이들이 지금은 존재조차 없어진 무서운 결과를 보고, 새삼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한때 잘나가던 블로그들이 운영을 하다 그만 중지한 것도 꽤 있었다. 생존이라는 것은 리얼리티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블로그도 인간의 생노병사의 사이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 블로그 '글쓰는 돼지'는 '생'했다. '노'와 '병'과 '사'가 찾아오기전 한 번 멋진 삶을 살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도산의 말을 좀 바꿔보자!


"한번 뿐인 블로그 인생, 독단과 아집으로 망가지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파워'를 얻어보자! 그러면 블로그에 똥을 발라도, 사람들은 클릭을 할 것이다!"



epilogue

이 글을 쓰는 것 조차 대중성과 겁나 먼 나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마지막 발악이다. 이러면 반드시 사멸한다. 그러니 변화를 하려는 것이다. 이제 시작 했으니 지켜볼 뿐이다!



"요이~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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