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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기누나의 생일파티 초대를 받아 갔다. 물론 빈손이다. 언제나 빈손이다. 공수래 공수거를 실천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나의 집은 언제나 열려있다! 동생들이 찾아가면 어김없이 따스한 밥상이 나온다. 주로 내가 마음이 속상하거나 고립감을 느낄 때 누나를 찾는다. 그러면 배불리 먹고, 누나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면 찬찬히 다 들어주고, '힘들었겠다'하며 등을 토닥거려 준다. 사실 그게 전부다. 근데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누나의 집을 찾는다. 시골에서 밤이슬 맞으며, 이웃집에 마실가는 아낙네처럼 말이다.
어제는 뉴페이스들도 함께 자리를 했다. 누나의 친구와 직장 동생, 2명이었다. 처음엔 좀 서먹했으나 곧 시래기 밥상집에서 소주 한 잔을 걸치고, 이야기를 하며, 대동단결! '우리는 하나다'의 정신을 보여주듯 장장 5시간의 수다 릴레이를 이어나갔다.
스스로 억압을 벗어던지고, 봉인을 풀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사실 구체적인 증례는 없다. 그래서 가끔씩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내가 무엇을 변화 시켰는가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사태는 이렇듯 현재의 사실이 아닌, 내가 현재 믿고, 생각하는 주관적인 체험에 의해 좌우됨을 재삼 확인한다. 그렇다. 현실은 내 눈에 씌워진 신념과 의무감에 의해 굴절된다. 그러니 현실에 부딫혀 좌충우돌하면 외부보다는 내 안에서 문제를 찾는 것이 유익하다. 왜냐? 세상은 결코 쉽게, 내맘대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나는 확인하고 싶어진다. 도대체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런 와중 5시간 수다를 통해 내가 변한 여러가지 증거들을 확인했다. 과거의 무의미한 잡스런 대화가 아닌 수다 안의 스토리가 생경하게 포착이 되고, 그 스토리에서 주요 인물을 설정하고, 내 주제의식과 사람들의 중요반응에 따라 적절한 플롯을 짠다. 그리고 그 짠 스토리에서 나름의 상상과 재미를 가미해 표현하면, 주변인들은 '올커니'하며, 취임새를 넣는다. 묘한 경험이다. 대화에서 스토리를 구성하고, 그 구성된 대화에서 어떤 의미를 뽑아내고, 그것을 주변 수다인들과 공유하며, 웃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서 과거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자아를 만난다. 바로 나다!
어렸을 적 우리 엄마는 동네에 미용실을 운영했다. 언제나 손님이 북적부적 많아 우리 엄마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밤에도 동네 사람들의 머리를 해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미용실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나의 대화 상대자들은 미용실을 찾는 아줌마들이었다. 아줌마들이 다 그렇듯이 대화의 주제는 다양하다. 연예계 이야기에서부터 가족, 이웃, 사회 이야기 등 잡담과 수다의 메이저리그라고나 할까!
그 어린 시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아줌마들과의 대화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발랑 까진 초딩은 아주머니들의 현란한 혀와 스토리를 몸소 체험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이후 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들을 상대로 말이다. 물론 전혀 그때 어떤 맥락으로 이야기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느낌만이 남아 있을 뿐!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아줌마들이 수다를 늘어놓는다. 그 수다를 듣는다. 그리고, 그 수다에서 나의 필터링과 구조를 통해 가공된 생각을 장난스럽고, 위트있게 표현한다. 아줌마들이 웃는다. 나는 즐겁다!
그랬다. 나는 아줌마들과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씩 아줌마들을 놀래킬 만큼의 말을 했더랬다. 격하게 반응하는 아줌마들의 몸짓에서 에너지를 충전받는다. 나의 잠재능력이 깨어나는 사건이었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줌마들과의 잡담과 수다는 거의 없었다. 단지 그때의 체험과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 가끔씩 비슷한 사태와 만나면 옛기억을 더듬으며, 불완전하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응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내 삶에 의미 없는 일들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믿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변덕이 아니다. 나의 신념과 의무감이 무너지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과거 어렸을 적 나의 발랑 까진 초딩의 능력이 스물스물 피어 오른다! 흥미롭다. 그것이 그간의 내 개인적 역사와 함께 혼합되어 섞여 더 풍부해지고, 통제력과 어휘구사능력이 향상되었다. 처음보는 이들과 수다를 떨다보니 어디선가 모를 자신감과 확신이 피어오른다. 변화의 증거로서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제 발휘할 마당들을 많이 찾아다녀야 한다는 의욕까지 생겼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으나 나는 나의 이러한 사태와 체험의 확장을 이렇게 이름붙이고자 한다!
'마당놀이와 사이코드라마_삶의 공유와 치유!'
별건 없다. 함께 놀아보자는 것이다. 유쾌하고 질펀하게! 진심어리고, 인간적으로!
잡담과 수다, 놀이가 끝나면 알 수 있다. 내가 별 소득없는 잡스런 수다를 떠들었는지, 아니면 속이 시원하고, 왠지 위로 받은 느낌이 들었는지!
나는 후자를 추구한다.!
아직은 미숙하다. 그러나 방향은 확실하다. 앞으로 만나는 이들과 이런 만남과 공감을 하고 싶다!
수다를 떤 멤버들과 헤어질 땐 오늘 처음 본 관계가 아니었다. 큰 만족감을 얻고, 오늘 정말 잘 놀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나중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우린 꽤 잘 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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