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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역주행으로 시청중이다. 보라매공원으로 산책을 하기 전, 잠시 티비를 본다는 것이 2시간동안 소파에 결박케 할 만큼 화려한 유혹의 흡입력은 화려했다. 액션씬이 많아 좋아한 거 아니다. 액션씬은 거의 없다. 화려한 유혹속에서 주연과 조연의 갈등과 의심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묶이게 된 것이다. 드라마의 흡입력은 바로 이렇게 사람을 티비 앞에 묶어두고 뚫어지게 티비를 바라보게 만드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리라! 화려한 유혹은 그러한 매력이 있다.
모든 이들이 이 화려한 유혹을 그렇게 바라보지는 않는다. 드라마 애호가 '우리 엄마'는 나오는 연기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 드라마 '화려한 유혹'에 캐스팅된 인물 중 매력이 있는 연기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드라마 캐스팅에서 연기자의 매력은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그래서 일급 스타를 쓰려고 안간힘을 쓰려는 것이다
난 화려한 유혹에서 매우 흥미로운 배우를 만난다. 바로 '정진영'이다! 1998년 영화 '약속'의 박신양의 의리있는 부하이자 형으로 나와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고, 점차 자신의 작품을 하나씩 쌓아가며 입지를 굳힌 대기만성형 배우이다. 화려한 유혹에서 퇴임한 중년의 총리역을 맡아 매우 오묘하고, 매력적인 운강 강석현을 열연중이다. 거액의 비자금을 숨기고, 갖은 비리의 보스이지만, 곧 심장병의 악화로 오래 살지 못할 시한부같은 인생을 남긴 인물을 매우 침착하고, 잔잔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정진영은 연기를 하고 있다.
정진영! 매우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늦깍이로 배우의 길을 걸어 이곳까지 온 것이다. 브레인이라고 할 만한 정진영을 몇년전 한 프로그램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모교를 방문해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교훈을 주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대학시절 연기판에 뛰어들어 엑스트라로 출연할 때, 동창이었던 배우 허준호를 만났다고 한다. 허준호가 공부만 하던 정진영을 보고, 놀라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한다. 연기를 이렇게 시작하면 안된다며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다는 것! 정진영의 시작은 미약했던 것이다.
후배들과 교실에서 대면하고, 혼자 앉아 아이들에게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다. 과거 고등학교 시절 연기를 시작하게 된 동기를 말하려는데, 갑작스럽게 머뭇거리기 시작하고, 눈시울이 붉어지며, 미세한 떨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촬영을 중단하며 돌아선다. 이 모습에서 매우 여리며, 섬세한 그의 연기감정의 기반이 느껴졌다. 난 언제나 정진영을 볼때면, 그때의 그 장면 2개가 생각난다. 연기자의 길을 홀로 고독히 걸었을 것이고, 대기만성형의 연기자로서, 섬세하고, 여린 연기감정을 소유한 정진영! 난 정진영을 그렇게 기억한다.
'화려한 유혹'에서 정진영이 연기하는 강석현은 매력적이다. 권력의 정점에서 갖은 악행과 비리를 저지르지만 묘하게도 밉거나 두렵지 않다. 온화하기도 하고, 묵묵하기도 한 듣한 인상에서 도저히 그러한 악의 이미지를 느낄 수 없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은 철저히 통제하고, 제거하는 단호한 모습에서 의외성을 발견한다. 이러한 강석현의 이중적인 얼굴을 정진영은 십분 연기를 통해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더욱이 그의 아픈 심장이 저미어오는 것이 심장질환인지, 아니면 옛 사랑에 대한 순정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시나리오도 마음에 든다. 죽음을 앞둔 정진영이 숨긴 거액의 비자금을 수색하며 찾아들어오는 보물탐사의 음모세력들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그 최전선에서 그 옛사랑에 대한 추억을 강하게 때리는 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최강희'다! 최강희의 등장에 정진영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계속 그녀에게서 날아드는 봄바람에 서서히 무장이 해제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권력의 정점에 다다르는 과정에서 타락한 자신을 직시하며, 과거의 자신이 배신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에 가슴아파하며, 그 용서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 더 들어가 그 옛사랑을 다시 만나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되살아나 최강희에게 투사된다.
그것은 중년에게 다시 찾아온 봄이다! 그 봄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벛꽃잎이 최강희라고 나는 상상한다. 이렇듯 '화려한 유혹'의 은유적이며, 상징적인 문학적인 표현방법이 꽤나 수준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왠지 모르게 정진영에게서 영화 '은교'의 노교수 모습도 투영되고, 성경의 돌아온 탕자를 떠올린다.
최강희라는 봄이 주상욱과 떠날려는 시점에서 강한 박탈감과 아쉬움에 선잠의 꿈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웃는 최강희을 보고,
웃으며 깨어난 이후 바로 슬픈 비애감이 그를 엄습한다.
1그리고 정진영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일장춘몽, 하룻밤 꿈을 꾼거지!"
고사 중 '장자의 나비'라는 꿈이야기가 있다. 장자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되어 유유히 날아다니는 꿈을 꾼 후 깨어난다. 어찌나 그 꿈이 생생한지 비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꿈 속에서 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가 되어 살아가는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더라'라는 이 이야기는 생생한 꿈과 현실의 격차에 대한 비애감과 함께 꿈에 대한 동경심이 드러난다.
정진영은 꿈속에서 옛사랑의 순정을 느끼게 해주는 최강희와의 사랑을 꾸었고, 그대로 그 꿈처럼 살 길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현실에서 오는 슬픔은 그를 낙담케 한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삶은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노년은 젊음을 꿈꾸기 때문이기도 하다!
티나지 않게 최강희를 뒤따르기도 하고,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미기도 하고, 떡볶이를 먹다가 애처럼 흘렸을때 자신의 옷을 닦아주는 최강희를 마음속에 품고,
떠나려는 최강희를 취중에 붙잡으려하는 노년의 여리면서 귀여운 애정행각을 벌이는 정진영의 모습이 멋졌다.
정진영에게 불어온 봄바람과 그 봄꽃인 최강희가 떠날 즈음 그에게 운명처럼 기회가 온다. 최강희는 복수를 꿈꾸며, 강력한 지원군이자 무기인 정진영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진영은 선뜻 이를 자처한다. 화려하게 펼쳐지는 유혹과 복수극에서 정진영의 봄바람이 빨리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내 가슴에서 일기 시작한다.
옥의 티가 있다. 정진영은 노년을 연기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멋진 중년이나 노년의 인물을 찾아볼 수 있을까? 언제나 책을 가까이 하고, 시를 암송하고, 차분히 연모하는 여인을 티나지 않게 조용히 따라다니며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자아성찰형 권력자! 아마도 드라마이게 때문에 가능하고, 또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꿈을 꾸어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여튼 화려한 유혹은 재미나다. 그 결말이 어찌 될 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희열을 느낀다. 중반부터 보았기에 어제부터 이 드라마의 역주행을 시작했다. 드라마를 거꾸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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