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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사운드 오브 뮤직을 통해 느낀 드라마의쾌감,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유쾌하고 멋지게 멋지게 변해가는 사람들의 조화
글쓰는 돼지 2015. 10. 26. 01:09'사운드 오브 뮤직'이 명작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만들어진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의 명쾌함, 아름다운 오스트라아의 배경, 그리고 영화내내 울려퍼지는 배경음악은 그 자체로 아이콘과 역사가 되어 우리의 뇌리에 박혀있다. 여전히 이 영화의 모든 내용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문화 컨텐츠의 모티브가 되고 있으며, 창작자들에게도 열정을 불어넣는 불후의 명작이다.
글쓰는 돼지 또한 이 영화를 수십번 보아왔으며, 언제나 볼때 마다 감동과 재미는 파도처럼 안겨왔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으며, 삶의 마디마디 마다 울림의 강도와 눈여겨보는 부분에 대한 관점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 내 삶의 있어서도 중요한 체크리스트와도 같다. 울적하거나 삶에 찌들어 갈 때 사운드 오브 뮤직의 줄리 앤드류스의 경쾌한 노랫가락과 아이들과의 찰떡같은 연기호흡을 볼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는 노폐물이 한번에 씻겨나가는 통쾌함을 느끼는 걸 보면 영화가 주는 치유의 힘은 막강하다.
영화는 자유분방한 마리아가 수녀원을 빠져나와 자연을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는 단절되고 짜여진 공간에 적응하기엔 마리아의 영혼은 너무나도 자유롭다는 맥락을 보여준다.
수녀원장의 추천으로 7명의 자녀가 있는 폰트랍대령 집의 가정교사로 가는 길은 걱정과 불안으로 마리아를 짖누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리아의 천성이 살아나 긍정의 에너지는 도시와 버스안을 가득매우고, 자신감에 부풀어 올라 폰트랍가의 문을 두드린다.
아이들과의 첫대면은 폰트랍대령의 호루라기 리듬에 맞추어 내려오는 병정놀이의 모습이었다. 이는 아이들의 극적 변화가 일어나기 위한 전제요건과도 같다.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의 허전함을 폰트랍대령은 호루라기와 규율로써 잡으려하나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을 마리아는 직감한다.
일렬로 줄을 선 아이들과 정면으로 마주친 마리아의 심정은 복잡하다. 군대와 같은 규율에서 아이들의 일사분란함에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측은함을 느낀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에 대한 마리아의 애정은 분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교감할 준비가 된 것이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자 새로 오는 가정교사들에게 짖궂은 장난을 쳐 계속 쫒아 보낸다. 마리아의 주머니에 개구리를 넣은 사건을 마리아는 눈감아 주고 오히려 아이들의 환대와 선물에 고마움을 전하여 저녁식사를 울음바다로 만든다. 이제 아이들도 마리아에게 교감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갑작스런 비바람과 벼락에 아이들이 하나 둘씩 마리아의 방에 찾아든다. 하나같이 벼락의 두려움에 벌벌 떨며 마리아의 침대를 파고든다.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그런 아이들을 침대에 둘러 앉히고 두려움을 쫒을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한다. 그것은 노래였다. '좋아하는 것들'을 노래에 붙여 하나씩 목청껏 부르니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아이들은 신이나 곧 두려움을 극복한다.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한 가정교사로서의 교육은 바로 음악수업이었다. 그 음악소리에 한걸음씩 변화의 과정을 밝는다.
마리아는 자신의 방 커텐을 뜯어 아이들의 놀이유니폼을 만들었고, 강과 도시, 알프스산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물론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다. 각 장면 마다 수채화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들은 이 영화의 새로운 볼거리다.
드디어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인 산언덕에서 마리아가 기타를 메고 아이들에게 도레미송을 가르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 이미지 자체가 이 영화의 상징과 같아 언제나 그렇듯 감성을 자극한다. 평화로운 산골에서의 아이들과의 어울림! 모든 이들이 한 번쯤 꿈꿔본 그러한 풍경이다.
폰트랍대령이 백작부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7명의 자녀는 더이상 그의 호각소리에 움직이던 아이들이 아니었다. 몰속에서 흠뻑 젖은 채로 나왔을 때 대령은 경악했고, 마리아와의 설전에서 그만 수녀원으로 돌아가라고 해고통지를 한다. 결코 마리아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치 않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대령과 대립을 한 것이다. 선생이란 존재가 큰 무게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화가난 폰트랍대령의 귀에 낯선 멜로디가 들린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이후 사라진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 소리를 찾아 발걸음을 재촉하여 응접실로 들어서니 줄지어 백작부인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자신의 아이들의 모습과 조우하고, 행복감에 같이 따라 부른다. 이제는 아이들의 변화가 아버지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화해를 하는 폰트랍대령 일가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마리아를 눈치챈 폰트랍대령은 그녀에게로 가 수녀원으로 가지 말고,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마리아는 가정교사를 뛰어넘어 가족의 일원이 된 것이다.
아이들과 인형극을 함께 공연하며, 노래와 극에 대한 이해도를 함께 공유하고, 이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했다.
즐거움을 더욱 느끼고자 한 무도회에서 마리아와 폰트랍대령은 마주보며 왈츠를 추며, 알수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게 된다. 백작부인은 이들의 감정을 눈치채고 마리아에게 떠날 것을 재촉한다.
아이들은 그러한 내막을 알지 못한 채 무도회에 온 손님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 또한 이 영화의 대표적 사운드 트랙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서 부터다. 마리아가 떠난 이후로 아이들은 더이상 즐겁지 않다. 노래를 불러도 전혀 생기가 돌지 않는다. 햇볕을 받지 못해 시들시들한 꽃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마리아를 보고픈 마음에 수녀원을 찾아가지만 마리아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와 예전 슬프거나 무서울 때, 마리아가 가르쳐준 '좋아하는 것들'을 부르며 마음을 달래려고 하지만 선율은 애처롭다. 그런 우울한 멜로디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마리아가 돌아온 것이다! 마리아의 노래에 달려가며, 아이들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마리아와 부둥켜 안는다. 이 장면에선 언제나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아이들에게 더이상 마리아는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난 언제나 드라마든 영화든 주목하는 부분이 구성원을의 변화지점이다. 누군가를 만나 함께 삶을 공유하면서 일어나는 자잘한 변화와 교감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기를 언제나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과 마리아, 폰트랍 대령 모두들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는 비타민같은 존재이며, 함께 인생을 꾸미는 공동주연들이다!
영화의 3분의 2지점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내겐 사실 이 부분이 영화의 실제적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성스러운 수녀에서 한 가족의 엄마로서 자리를 옮기는 상징적 연출 또한 이 영화의 또다른 볼거리다. 성스러움은 성과 속의 구분 없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이룩되는 것임을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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