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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를 입학한 그 주 금요일, 3월 6일이었다.
대략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수업이었으니, 2시쯤 이었던 것 같다. 첫수업을 듣기 위해 3층 강의실로 향한다. 자리에 착석하여 교수님을 기다린다.
강의과목은 '법학개론'
곧 문을 열고, 교수님이 등장하신다. 허연 머리카락을 가진 그 분은 큰 뿔테 안경을 끼고, 갈색 체크무늬의 콤비마이를 입고 계셨다.
곧 다른 타과생들이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다른 수업을 듣도록, 조용한 압박을 넣는다. 희안한다. 첫수업에서 사람들을 내쫒으려 하시다니...
그리고 첫 수업으로서 한 대상은 헌법! 나라의 기본법으로,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권력의 통치구조를 규정한 법규범이다.
그러나 첫수업부터 매우 요상하고, 파격적이다. 아직도 그때 첫 수업수업이 잊어지지 않는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있는데, 내게 화이트헤드를 떠올리면, 언제나 이 교수님이 생각난다.
드디어 첫 강의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것은 잘못된 법규정이다.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코메디공화국이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냥 수업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기법으로써 받아들였다.
그러나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첫수업의 가르침을 곱씹어 보면, 난 애초에 법률해석학보다 '법사회학'을 먼저 들었던 것이다.
법률은 명문의 규정으로, 이 사회의 기본적 사회규범으로 기능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그렇게 반영되는지는 각 나라의 현실마다 다르다.
교수님의 그 첫 가르침은 여전히 내 가슴에 아롱지게 박혀 있다.
그리고 그 교수님은 내 최초의 스승님이 되었다. 그분은 나의 20대를 지배한 정신적 지주였으며, 롤모델이었다. 그 분을 닮고 싶었다.
그러나 흉내는 흉내일 뿐, 그 분처럼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을 아는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생에서 스승은 여러가지 의미를 갖는다. 삶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를 다르게 만드는 마법의 지팡이같은 존재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겐 변화가 몰려왔다.
현실의 변화! 그 현실의 변화에서 스승님의 기능과 가치도 변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무능과 게으름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그 뿐만은 아니였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매우 유아적인 실수를 했고, 이를 자각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스승의 존재가치는 스승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스승을 너머 나의 가치를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설사 그것이 스승을 부정하고, 부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부정과 파괴는 학문적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희안하게도 스승을 부정하고, 나를 자각하는 순간 해방감과 함께 평화가 깃들었다. 정말 묘한 체험이었다.
그 체험은 결국 안티테제를 가능케 하는 전제, 테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스승이라는 테제를 부정하고 나서야, 자립할 수 있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의아 스러울 따름이다.
그렇다고 스승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불경이 나중에 나의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면, 응당 스승은 그 불경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승! 어찌보면, 제자의 타오르는 불길을 마중하기 위한 불쏘시개가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이전같았다면, 너무나 불경스러워 입에도 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 변화가 지금 나를 자유롭게 때문이다.
스승님! 그 분을 만난 날이 오늘 3월 6일이다! 나는 그분을 생각하지만, freshman일 때와 지금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불충스럽지만, 현재 스승의 부정으로 내가 내 '칼자루'를 지고, 포스의 균형이 찾아왔을 때,
그 분 앞에 서서 그 '칼'을 보여드리며, 이 칼의 초식 기저에는 '스승'의 혼이 스며들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어깨들 두드려줄 스승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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