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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형의 사무실은 신림동 원룸들이 즐비한 곳에 있다. 신림동 원룸들이 빼곡히 있는 중간에 있는지라 사무실로 가는 신림동 길엔 원룸들과 부동산중개업소가 장사진을 이루어 도열해 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신림동에 이리도 원룸이 많은지 몰랐다. 신림역이 가까이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신림동 원룸이 이리도 많이 형성되어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강남쪽에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강남쪽 주거비용이 비싸 이를 아끼기 위해서 일 것이다. 신림동 원룸촌 구석구석 요즘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걸스데이의 혜리의 광고판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형 사무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점심을 먹으러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나온다. 근데 형이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마실 곳이 없다고 한다. 몇달전 그 중국집 앞에 맛도 좋고, 가격도 착한 신림동 커피집이 있지 않나고 반문하자, 몇일전 폐업했다고 한다. 거기 장사도 잘되는데 왜 문을 닫았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형이 하는 말!


"연말에 고객이랑 함께 커피 마시러 갔는데 그 젊은 여자사장이 눈이 퉁퉁 부어올랐어!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상가주인이 재건축한다고 나가라고 했다네! 그것도 계약만료일 3일전에 말이야!"


워낙에 이런 일이 요즘 비일비재하다보니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나 나 또한 이미 그 신림동 원룸지역의 커피집을 가보았고, 친절하게 자신의 고객을 알뜰살뜰 챙기던 젊은 여자사장을 보았기에 안쓰러움을 느끼었다. 사장의 인상은 동글동글 했으며,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자기 혼자 문을 열고, 쓸고 닦고, 커피를 볶고, 또 갈아 커피를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까지 모두 다 그녀의 손으로 했다. 크게 하는 장사가 아니었으니 알바도 쓰지 않았다. 조금은 고생스럽더라도 그냥 아기자기 소꿉장난하듯 그렇지만 소신을 가지고, 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영업을 했으니 한 명, 한 명 찾아오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에 이렇듯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소유주와 커피집 주인간의 디테일한 사정은 알 수 없다. 정말 재건축을 위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면서, 법치주의 사회에서는 언제나 다양하다. 그래도 이런 젊은 소사장들의 울며, 좌절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 친구에게 듣기로는 어떤 유력인사가 자신의 건물 1층에서 아주 잘되는 중국집이 있어 계약 갱신을 할 때, 수를 썼다고 한다. 소유주를 믿고, 계약서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계약을 하고 영업을 했는데 갑작스럽게 해지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소유주가 가게를 리모델링하고 다른 업종을 하겠다고 하여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나왔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력인사이면서 건물주는 버젓히 중국집을 운영하더라는 것이다. 이를 이르러 '짜장면집 탈취 사건'으로 까지 이를 정도로 건물주의 파렴치한 행동이 현실로 일어나는 게 현재의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나는 이 커피집의 속사정을 모른다. 단지 저런 일이 있었으니 젊은 커피집 사장이 이런 일을 당했을까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상상으로 치부하기 힘든게 요즘이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 날! 눈물을 흘려 눈이 퉁퉁 부은 젊은 여사장은 들어온 손님을 최선을 다해 따뜻하고 구수한 커피 한 잔을 내려 주고 그 동안 이용해 주셔서 감사했다는 인사말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감정이입이 되어 순간 울컥하는 기분을 애써 참는다! 


인생의 젊은 시절에 당하는 고통을 당연하게 치부하며, 오히려 그러한 고통을 당연하게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하는 기득세력들이 있다. 이를 테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개똥 같은 이야기를 지껄이는 인간들의 입안에 재갈을 물리고 싶다. 아프면 애고, 청춘이고, 노인이고, 다 고통스럽다. 청춘이라면 고통도 달게 넘겨야 한다는 개똥같은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고통은 고통이다. 누구든 고통에 달갑지 않다. 가능하면 그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다. 젊다고, 경험이 없다고,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빨아먹으러 들이대지 말아라! 



형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신림동 원룸지역 커피집을 지나며 유리문에 붙어있는 영업종료 안내문을 보고 사진을 찍는다! 좌절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를 피력하는 대자보를 보며, 가슴속 깊이 응원을 했다. 그녀가 다시 재기하여 커피집을 오픈하면 꼭 가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응원의 전부는 이것 뿐이다!


신림동 원룸촌 커피집을 뒤로하고 나는 나의 길은 뚜벅 뚜벅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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