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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993년 문민정부를 세우며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봄을 가져온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들려왔다. 향년 88세에 영면에 들어선 것이다.
1927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하여 27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40대기수론을 내세우며 필생의 라이벌이 되어 정치의 양김시대를 열었으며 의원직 영구제명의 첫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절 숱한 압제에도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며 정치투쟁을 이어간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1991년 삼당야합이라는 변절자로 낙인이 찍히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그의 의지는 명확했다.
일단 생존해야한다는 그의 결정은 1993년 문민정부의 서막을 연 것이다.
집권초기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전두환 잔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역사청산의 서막을 열며 강력한 개혁 정책을 벌인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고 있다.
그러나 집권 말기로 이어지면서 차남 김현철의 국정농단, 한보사태, 이어 IMF체제라는 국가부도 위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린다.
사실상 이때 이후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저평가되게 되었다. 앞으로의 역사적 재평가가 이르어져야 하는 역대 대통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하며 오직 그의 이름과 행적만이 남는 사실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나의 중고등시절과 궤를 같이하며 대학입학의 문턱에서 IMF를 선사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신의 개혁정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뉴스 속에서 그의 똑똑한 차남 김현철의 오버랩 이미지가 인생사의 롤러코스터를 느끼게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장례식은 가족과의 협의를 통해 국민장, 국장, 가족장 중 선택하여 거행할 계획이다.
문민정부, 금융실명제, 역사청산, 세계화, IMF 등 굴곡 많은 정치인생을 평안한 영면에 든 김영삼 전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927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하여 27세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40대기수론을 내세우며 필생의 라이벌이 되어 정치의 양김시대를 열었으며 의원직 영구제명의 첫 사례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절 숱한 압제에도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며 정치투쟁을 이어간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1991년 삼당야합이라는 변절자로 낙인이 찍히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그의 의지는 명확했다.
일단 생존해야한다는 그의 결정은 1993년 문민정부의 서막을 연 것이다.
집권초기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 전두환 잔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켜 역사청산의 서막을 열며 강력한 개혁 정책을 벌인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남고 있다.
그러나 집권 말기로 이어지면서 차남 김현철의 국정농단, 한보사태, 이어 IMF체제라는 국가부도 위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나락으로 떨어린다.
사실상 이때 이후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저평가되게 되었다. 앞으로의 역사적 재평가가 이르어져야 하는 역대 대통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하며 오직 그의 이름과 행적만이 남는 사실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나의 중고등시절과 궤를 같이하며 대학입학의 문턱에서 IMF를 선사한 김영삼 전 대통령, 당신의 개혁정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 뉴스 속에서 그의 똑똑한 차남 김현철의 오버랩 이미지가 인생사의 롤러코스터를 느끼게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장례식은 가족과의 협의를 통해 국민장, 국장, 가족장 중 선택하여 거행할 계획이다.
문민정부, 금융실명제, 역사청산, 세계화, IMF 등 굴곡 많은 정치인생을 평안한 영면에 든 김영삼 전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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