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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이 다양함 속에 어떤 규칙이나 패턴들이 있지 않을까를 생각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갈등을 일으킨다. 사람의 운명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신념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서는 자신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사주를 보거나 타로라는 카드점을 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알 수 없는, 오지 않은 미래를 조금이나마 컨트롤하고 싶어한다. 그 시도가 맞든 틀리든 사실 그 지점은 지금의 이야기와 별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불투명한 미래를 통제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이 시도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불완전한지도 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역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문제와 맥을 같이 한다.


인간의 인생과 운명! 우리 삶의 지대한 기반을 형성하고, 지배하며, 그 틈바구니 안에서 성취와 좌절, 회복과 악화를 목격한다. 인간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며, 가족과 나라의 운명도 언제나 흥망성쇠라는 대전제에서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그 성공과 좌절의 시차와 폭은 모두 다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는 예외가 없다. 우리가 땅을 밟고 있는 이 땅의 나라들도 흥망의 역사로 쓰여졌던가! 역사적 기록이 흐릿한 고조선에서부터 조선까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기껏해야 70년에 불과하다는 사실! 생각해보면 우린 참 많을 것을 의식없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산다. 


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 강렬하게 의식과 무의식 근저에서 올라오는 의문의 에너지들이 느껴진다. 내가 그간 나를 스스로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통제하고 살아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매우 큰 차이를 낳는다.




영화 '굿윌헌팅'에서 제멋대로 인생을 탕진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멧 데이먼이 심리학 교수인 로빈 윌리엄스를 만나면서 서서히 인생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영화 '굿윌헌팅'의 핵심 대사가 흘러 나온다. 로빈 윌리엄스가 멧 데이먼에게 하는 말.


"네 잘못이 아니야!"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멧 데이먼이 스스로 자신의 의지대로 고집대로 살고 있는 모습이 자신이 실제로 통제하여 만들어낸 산물이 아님을 의미한다. 인생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핏줄이라는 뿌리에 근거를 둔다. 자연의 법칙이니 이것은 예외가 없다. 그렇게 태어난 존재는 가족이나 또는 시설이라는 사회의 시스템에서 길러진다. 그 최소단위의 사회체계내에서 양육된 존재는 결코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다. 그 가족이라는 체계내에서 학습된 결과물이 자신의 시작이 된다. 그 모습은 각 가정마다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차이는 너무나 다양해서 관찰하고, 그 공통점을 추출하기엔 매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 내에서도 각 개별적 존재의 감정과 의식, 가치관이 뒤범벅된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과 관계설정은 언제나 오류와 오해를 내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과 실수, 좌절이 결코 자신만의 잘못만은 아니며, 어쩌면 재수없게, 어쩌면 운에 따라 형성되는 아주 엿같은 확률의 작용이 만들어 낸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자신을 자책할 필요도 없이, 그냥 로빈 윌리엄스가 멧 데이먼을 위로 하듯이 그의 잘못이 아니니 더이상 과거에 얼매이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 보고, 내면의 목소리가 울리는 대로 한 번 가보라는 메시지는 비단 미국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단 지금의 내 허물과 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 그것은 지금의 나라는 존재에게 큰 위로를 준다. 그 위로가 앞으로의 삶에 대한 에너지의 생산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미 결정되어 있는 조건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좌절을 맛보았을때 의례 남탓을 하는 일이 일수인 사람들이 있다. 부모를 잘못 만났다든지, 만나선 안될 친구나 인연을 만났다는지 하는 푸념을 일상적으로 늘어놓는 일이 많기도 하다. '잘되면 내탓, 잘못되면 조상탓!' 삶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그렇다. 이 세상은 또 주어진 조건대로 살지 않고, 개척과 도전정신으로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업적을 창설하는 일도 꽤나 많다.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확인해 두고 싶은 말이지만 개천에서 용이 되는 일은 지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주변에 용이 많다면 그것은 결코 비범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다들 잘난 용들이라면 굳이 개천을 언급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의 좌절과 실패, 불만이 내 잘못이라는 것이냐? 아니면 내 탓이 아니냐? 둘 중 무엇이냐?  모순적이게도 둘 다 맞는 말이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무시할 수도 없고, 변명거리로 놔둘 수 없는 이 아이러니가 우리의 삶을 직접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빨리 각성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삶의 균형을 찾고, 행복으로 이르는 길에 첫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 이야기를 하기엔 내 체험은 일천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각성에 대한 운을 떼는 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나의 과거로부터의 삶에서 내 스스로 자신에게 설정한 봉인, 구속에 관하여 말이다. 지금의 모습을 관조하며 왜 나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나, 왜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지 의문을 진지하고, 깊게 제기하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엔 나의 삶의 방향과 가치관, 태도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간 내겐 1명의 스승님과 1명의 선생을 만나 많은 지도와 깨우침을 얻었다고 자부하며 그들을 롤모델로 내 삶을 통제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미 원래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독선적이고, 아집에 따라 내 시선내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어왔다. '우물 안 개구리'는 나를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의 하늘은 저렇게 우물 뚜껑의 크기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믿고, 굳이 우물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개구리를 비꼬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물 밖 세상을 목격한 다른 존재들의 조언을 무시하기 일쑤이다. 어쩌면 그렇게 현재와의 내 삶과 닮아있을까!


나의 스승님도 그렇고, 30대가 넘어 만난 선생도 내게 그런 존재들이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사는데도 세상에서 나름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내 눈으로 보기에는 멋지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며, 내 자신의 선택과 방향, 가치관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부지런히 살지 않은 게으름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롤모델 삼아 나의 아집과 주관을 더 강화하려했다. 그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 스러운 것인가! 우물안 개구리왕에게 복속하는 꼬붕 개구리의 모습이란!




스승님을 만난 시기에 나름의 전환적 성과를 얻고, 나 자신에 대한 봉인을 한다. 주어진 조건에서 그 당시 원하던 삶의 목표를 위해서는 다채로운 삶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올인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러한 여유는 인생의 사치이며, 쓸모없는 일이라고 까지 치부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이로써 나의 20대 시절은 작살났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으나 그런 삶의 단조로움이 내 개인의 행복에 얼마나 아쉬움을 크게 남겼는지는 헤아리기 힘들다. 


이러한 삶의 반성을 할려는 차에 두 번째 시련이 다가온다. 30대에 만난 선생! 이 사람을 만났을 때 이미 난 편했다. 20대의 스승님과의 비슷한 패턴이었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렇다. 그 두 명의 스승은 닮았다. 나는 과거의 그 편안함과 새로운 학습의 기회에서 또다시 다음의 봉인을 실행한다. 사람을 믿고 만 것이다. 


그로부터 5년! 그 2번의 봉인이 나를 매우 불행케 만든 원인임을 자각한다. 그 봉인은 내 무지와 변하지 않으려는 관성, 과거의 익숙함, 게으름 등 어둠의 에너지가 짙게 작용한 결과다. 모두 다 나의 탓이다. 이건 분명 남의 탓이 아닌 내 탓이다. 나 스스로 봉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나중에 한 봉인을 푸는데 5년이 걸렸다. 그 5년간 봉인된 삶 안에서 나름의 성과를 내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애초의 봉인이 전심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댓가는 뼈가 시를 정도였다. 그러나 5년간의 모험은 나를 변화시켰다. 그 변화의 힘이 한 개의 봉인을 뜯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감히 뜯어버렸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감이 찾아온다. 그 우울감을 극복하는데 장장 6개월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나 단순히 6개월이 봉인 하나를 뜯어낸 것이라는 성과로 끝나지 않았다. 21살에 설정한 봉인도 뜯어낸 것이다. 인생의 잘못된 방향설정과 헛된 희망, 어떤 가치를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를 깡그리 폐기처분할 수 있다는 극단적 삶의 선택! 그러한 급진적 삶의 운영이 그 당시 나의 촌스러운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 봉인에 프레스된 마크가 내 스승님이라는 사실은 내 20대 이후 인생의 최대 변화지점이었다. 그 스승님과 함께 나의 객기였던 봉인마저 뜯어낸 것이 지난달 이었다. 


그리고 평화감이 찾아온 것이 이번달 16일! 참으로 드라마처럼 내 인생에 펼쳐지는 이 감정적 현상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만화처럼 마음에 행복감이 젖어드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이 점이 또다른 문제 제기로 이어짐을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아직도 내겐 남아있는 봉인이 하나 더 있다. 그 봉인은 내 나이 14살에 만든 것이다. 어쩌면 그 첫 의식적 봉인이 두번째 봉인과 세번째 봉인으로 이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첫 봉인이 나에겐 원초적인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봉인은 나의 잘못이 확실하다. 그것은 분명하다.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강렬한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봉인은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며, 단순히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의 굴레와 같던 것이다. 그 운명의 단추가 채워지고, 나는 개구장이 였던 유년시절의 본모습에 봉인마크를 찍어버렸다. 


다른 이들이 질풍노도와 같은 십대시절과 달리 나의 봉인주뭄은 단순했다. 


"정도를 가자! 비난 받는 삶을 살지 말자!"


중1이 내린 삶의 결단 치곤 꽤나 거창하지만 그땐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 다른 이들은 이때 사춘기를 겪는다는데 나는 매우 평안했다.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었고, 무뚝뚝하게 걸어 나갔다. 일례로 고등학교 3년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야간자율학습을 한 번도 빠진 것이 없는 그 성실함! 그것이 고등학교 3년간의 몇 안되는 자랑거리였으니 핵심을 놓치고 주변의 부수적 요소에 집중력을 빼앗긴 삶은 이때도 여전했다. 여하튼 나의 십대시절의 중심은 '의무감'이었다.



이 무거운 삶의 굴레에 대한 부담감은 사실 지금도 남아있다. 2번의 봉인해제는 완료했어도, 첫 봉인은 여전히 잔존해 나의 현 삶을 강하게 지배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 첫 봉인 해제는 매우 간단히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단지 내가 이 봉인을 아직 해제하고 싶지 않은 집착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는 뚜렷하게 모르겠으나 조금씩 그 정체를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고 있다.





그것은 매우 이질적이며 우연하게 찾아온 기회로부터 비롯된다. 처음으로 봉인을 해제한 이후 한달간 극심한 혼란과 우울감이 나를 강하게 짖누를 때였다. 이러다 사람이 죽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둠의 포스가 작렬하던 뜨거운 여름의 시작에 즈음하여, 우연하게 만난 어떤 이에게 제안받은 일에서 인식할 수 없는 변화는 시작되었다. 이때만해도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만 생각했지 다른 방도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그의 노란차에 몸을 실었던 나의 즉시적 행동실천은 그 이전엔 없던 것이었다. 그 당시 얼마나 내가 절박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그 노란차에 몸을 실었던 행위가 이제와서 나의 첫 봉인이면서, 내게 마지막 남은 봉인 해제의 실마리가 되었음을 안 것은 오늘 아침의 일이었다. 이 모든 사태가 이번 12월에 들어서면서 묘하게 모여져 하나의 전체적 이미지를 드러나는 과정에 사실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렇게 터무니 없던 내 순진무구한 운명론을 타파하자고 부르짖는 지금의 모습에서 다시 이러한 운명감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노란차는 아무리 봐도 운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 "Yellow Car"가 나를 유년시절의 나로 연결시켜주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 말도 안되며 꿈 같은 현실에서 나는 어떠한 '초현실적 체험'을 한다. 결코 현실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운명적 조우말이다!


그 노란차를 끌고, 처음에는 무심하고, 내게 닥친 작금의 문제에 혼란을 겪다가 조금씩 정리를 하며 심리적 안정감이 오고, 그러면서 고양된 각성이 봉인을 해제하고, 다시 유년의 나를 바라보게 하는 마법같은 체험! 내가 만화를 그릴 능력이 되면 만들고 싶을 만큼 플롯이 단단하게 구성되는 스토리의 완결성이 갖추어지는 이 묘한 쾌감!


그러나 아직 이 노란차의 기적의 결말을 아직 보지 못했다. 오늘 아침의 꿈속에서 본 유효기간 지난 두부와 물을 뱉어내었는데 각각 유효기간 만료일이 2008년과 2010년으로까지 생생하게 꾸었다. 그 꿈을 꾸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12월 8일에 찾아온 쓰나미 바이러스때문에 계속해서 자료와 사진들의 백업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그저께 모든 백업을 완료했다. 유년시절 카테고리 폴더의 사진들을 보다 고양된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을 헤아리다 각성이 찾아온다. 


노란차와 6개월의 체험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노란차에 올랐던 나의 순간적인 선택이 이제서야 섬광처럼 링크가 걸린 것이다. 노란차로 그 봉인을 풀 실마리를 얻었고, 그 노란차의 열쇠가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모습을 지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평소 같았으면 의식적으로 울지 않기 위해 감정을 통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슬픈 감정만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고여 사진들은 뿌옇게 흐려지고, 곧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온다. 예전에도 한 번 경험을 했더랬다. 내가 알던 어떤 사람이 과거 자신의 유년시절 어떤 슬픈 장면을 묘사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사뭇치게 마음을 때렸는지 그로부터 1시간이 넘게 목놓아 울었다. 신기하게도 울면서 감정이 말끔해지는 체험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던 '카타르시스!' 감정의 찌꺼기가 배출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내 첫봉인의 게이트 앞에서 Yellow Car Key를 들고, 담담하게 서 있다. 이제 곧 열릴 그 게이트를 바라보니 감회가 새롭다. 마지막의 봉인을 풀어버리는 것은 이제 나의 결심에 달려있고, 그 의무감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 것과 같다. 이제 그럴 만도 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내 행복을 위해 이 첫봉인을 풀어헤칠 것이다. 단순히 내 개인적 차원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이는 나를 둘러싼 나의 주변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정이기도 하다. 



마지막 스테이지에 와 탑에 갖혀있는 공주를 구출할 제다이 기사의 심정이랄까! 



















여하튼 성문을 열고, 불을 뿜는 용과의 사투만이 남았다. 건투를 빈다! Knight J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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