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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강유원의 강의와  앨런 블룸의 '미국정신의 종말'


결국은 사고 말았다. 앨런 블룸이 쓴 미국정신의 종말! 내 삶이 지금 종말에 가까운 상황에서 또다시 이런 책을 사들이는게 정신나간 짓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마우스는 예스24의 '구매하기'버튼으로 향한다. 그토록 '사지 말자, 사지 말자'라고 되뇌이던 나의 의식은 한 푼어치도 되지 않는다. 취향과 습관은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인가 보다.



내가 앨런 블룸의 '미국정신의 종말'을 구매한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건 예전 철학자 강유원의 강의를 통해서 앨런 블룸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유원은 한때 '회사원 철학자'로 불린 적이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 한 교육회사의 '웹마스터'로 근무하며, 퇴근 후에는 철학적 연마를 꾸준히 해왔던 것이다. 그런 그가 회사를 나온 이후에는 도서관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등 인문학 강의를 해왔다. 내가 철학자 강유원을 처음 본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2010년 가을 안산 중앙도서관에서 자신의 책, '인문고전강의'를 텍스트로 강의를 했던 때였다. 당시의 인상은 파격적이었다. 긴 머리를 꽁지머리로 묶고 나타난 철학자 강유원은 철학자라기 보다는 동네 아저씨같았다. 체격도 컸고, 살짝 광주사투리가 섞인 말투에, 상대를 압도하는 어법이 퍽 인상 깊었다.


사실 첫 만남에서는 철학자 강유원의 가치를 잘 알지 못했다. 건방지게 맨 뒤에서 팔짱을 낀채 그의 강의를 들었다. 이후 2회의 강의 후 수업은 없어졌다.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중에 다른 강의녹음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심장마비 증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쉬움으로 철학자 강유원의 책을 몇 권 더 구입하고, 그의 강의를 이것저것 듣다보니 그의 능력과 내공이 매우 견고하고, 탄탄함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강의 또한 감칠맛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한다. 여태껏 들어본 강의 중 내 개인적 평가로는 최상급의 수준이었다.


철학자 강유원이 강의 중 한 말이 꽤 기억에 남는다.


"여러분! 어줍잖은 동시대의 문학작품을 읽는데 시간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00년후, 200년후에 그 책들이 존재한다는 보장은 없죠. 거의 대개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지성의 정수, 고전은 수천년이 지나면서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읽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고전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 육성은 강렬하게 내 마음에 꽃혔다. 수천년을 이어오는 생명은 그것은 인류의 종말이 오기 전까지 유지가 될 것이다. 인류의 보편성과 생명력의 최소는 결국 고전이구나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런 철학자 강유원은 언제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고전도 '급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학자도 '급수'가 있다는 것! 그는 매우 간결하고,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그것도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동시대의 학자들도 일진급으로 대접받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로 고전, 일진급의 학자들이 남긴 고전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강유원이 언급한 이가 바로 앨런 블룸이다. 앨런 블룸은 미국의 정치철학자이다. 시카고대학의 교수이면서, 저명한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라고 한다. 그가 번역한 이는 서양철학사의 거두 '플라톤'의 '국가'이다. 일진급의 철학고전을 현대어로 번역함으로써 일진학자로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설복당한다.



그래서 언제나 앨런 블룸이라는 이름은 까먹지 않았다. 어느 때인가 심심하여, 에스24에서 앨런 블룸을 검색해 보았다. 한권의 책이 검색된다.  바로 앨런 블룸의 '미국정신의 종말'이다. 영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강대국 미국의 종말이라는 것도 영 현실감이 다가 오지 않는데, '정신'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나오는 영 땡김이 없다. 그러나 앨런 블룸의 이름이, 그가 쓴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한동안 인문학 책을 절대 사지 않겠다는 다짐과 사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그러나 결국 사버렸다. 이 책은 그래도 철학서치곤 가격이 싸다. 이미 예전 80년대에 출판된 책을 거의 비슷한 외형으로 쇄를 거듭한 것이기에 가격이 1만원도 넘지 않는다. 



부담없는 가격! 샀다. 그리고 오늘 도착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철학자 강유원이 일진급 학자라고 말한 앨런 블룸의 책 '미국정신의 종말'을 언제 다 읽어볼지 기약이 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앞부분과 뒷부분을 훑어보고, 찾아보기에서 나열된 기라성같은 학자들의 이름을 보면서, 이 책에서 철학자들과 그의 저서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또한 앨런 블룸이 미국사회의 대학에서 고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예전만 못하다는, 그래서 그로인해 위기가 올 것이라는 뉘앙스가 풍겨진다. 그러나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다.


지금의 내 상황에서 이런 책을 사는 것이 미친 짓같지만, 그래도 인간이 변하던가! 하던 일은 하며 살아야지!


갑자기 철학자 강유원의 강의 육성이 듣고 싶어 진다. 역시 미친 짓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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